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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젠코/글

[가로젠코]낙원-7(完)

오비탈 2018. 12. 28. 15:32

 

걱정 마. 안 죽였어.”

 

젠코의 얼굴에서 약간의 안도가 스쳤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가로우는 그것을 알지만 서둘러 젠코를 안고 집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서 몸을 추스르는 좀비맨이 보였다. 그는 쓰러진 히어로들을 챙기고 있었다.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으니 가로우와 젠코가 있는 방향에는 시선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사납게 타오르는 불길 때문에 가로우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었다. 가로우는 불길과 히어로들을 피해 꽃밭을 벗어났다.

 

.”

 

젠코는 꽃밭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갈 때까지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오빠를 보았을까. 가로우는 어두운 젠코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젠코가 입을 열었다.

 

우리 오빠도 있더라.”

기절만 시켰어. 미안.”

아니야. 어쩔 수 없잖아. 그것 때문이 아니야.”

.”

 

가로우도 알고 있다. 히어로가 꽃밭을 불태우고 젠코가 있는 집을 포위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의롭고 곧았던 여자는 이제 세간에서 정체불명의 괴인으로 불리고 있을 터였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마주하니 생각보다도 가슴이 아팠다. 병원 한 번 마음 편히 갈 수 없고 추적 당할까봐 핸드폰도 못 쓰는 현실이 못내 시렸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젠코는 가로우를 바라보며 자신의 배에 손을 올렸다. 후회하지 않는 이유라면 이 둘만으로 충분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불타오르는 꽃밭을 보았다.

 

아깝다. 오빠가 열심히 가꾼 건데.”

 

완연한 불길이 꽃밭을 불태우며 그들이 살았던 집까지 덮었다. 오랫동안 꿈을 꾸게 해주었던 그들의 낙원이 한 줌의 재로 변하고 있었다.

 

저런 것쯤이야. 너만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어.”

 

가로우가 젠코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거리를 두었는데도 후끈한 열기가 그들의 몸을 데웠다. 가로우는 길게 자란 젠코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옮기자. 혹시 몰라서 봐둔 곳이 있어. 허름한 집뿐이지만다시 시작하면 돼. 이것보다도 넓은 꽃밭을 만들어줄게. 너만 원한다면 고양이도 기르고, 강아지도 기르고.”

 

가로우는 젠코의 허리에 둘렀던 손을 내려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이도 키우고.”

 

아이를 언급하는 그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무미건조했다.

 

. 어디든지 따라갈게.”

 

젠코는 가만히 웃었다. 슬프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매캐한 연기가 바람을 타고 그들의 반대편으로 흘러갔다. 나무로 만든 집의 기둥이 꺾이고 지붕이 무너졌다. 불길은 노을이 지고 하얀 달이 떠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로우는 젠코를 껴안고 오래도록 서있었다. 전부 불살라져 불씨조차 남지 않을 때까지 고요히 타오르는 그들의 낙원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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